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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19장 삭개오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삭개오 이야기를 19장에 넣었을까요? 저도 어제까지 몰랐습니다

누가는 2절에서 삭개오는 "세리의 우두머리" 세관장, 즉 로마 제국주의 앞잡이이고 돈을 많이 축재한 "부자"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조국 교회에서는 이 정보를 무시하고, "키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쳐 만났다" 정도로 간단 축소해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도 오래 전 주일학교 공과교재에 그렇다고 나와서 그렇게 학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삭개오보다 키 큰 사람들은 예수님 관심 대상 밖이었을까요? 또 예수님을 만나려면 눈을 마주쳐야 할까요? 그럴리가요... 절대 그럴 리 없겠지요... 장님이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떴습니다

흥미롭게도 누가복음 18장에는 "세리"를 경멸하는 바리새인, 예수님 앞에서 거짓 신앙이 들통난 "부자" 지도자(바리새인)가 등장합니다.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18장에 나온 "부자"였고 바리새인에게 경멸 당하고 회당 밖에서 기도할 수 없었던 18장에 나온 세리였습니다. 그러니까 19장 삭개오 이야기는 앞 18장에 나온 사건들의 연속선 상에서 봐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추가로 누가복음 3:13에서 세례자 요한이 세리를 향해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라고 말했는데, 당시 세리들은 세금을 더 거두고 나머지를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마태 5:46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을 정도로 세리는
동족 유대인의 경멸 대상이었고 누가복음 18:13에서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회당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국 교회에서 자주 듣는, 그러나 구체적인 예를 전혀 듣지 못하는 "차별 당하고 멸시 받는" 경우가 바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제국주의 경쟁"으로 동족에게 상처를 준 세리의 우두머리였고, 부자였습니다! 당연히 종교적 열성당원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학자들의 성토대상이었습니다. 누가는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삭개오는 부자였고 여리고 성 세리들의 우두머리였다"고 그를 19:2에 소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제국주의 경쟁을 부추기며 동족을 착취하던 삭개오를 부르시면서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거하여야 하리라 must stay at your home"이라고 같이 가던 예수님의 일행, 그 장면에 있었던 사람 모두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조국 교회의 많은 분들이 "독재자" 박정희 이승만 전두환 장군을 미워하듯이, 삭개오는 당시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날 "내가 너희 집에 꼭 머물러야겠다" 이렇게 말하시고 그 집으로 가신 겁니다!!!! 마치 문둥병자 집에 꼭 가야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어떻게 그날 예수님에게 왔을까요? 새생명 잔치 초대를 받아서? 삭개오 옆에 친구가 추천해서? "세리와 창기의 친구"라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뭐 이런 분이 다 있나? 한 번 얼굴이라도 봐야겠네" 그래서 가지 않았을까요? 얼굴을 봐야겠는데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으니까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던 일행, 예수님을 따라 가던 일행이 여럿 있어서 누가 예수님인지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해서 스마트폰으로 교회 홈페이지 담임목사님 얼굴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그때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순간 예수님 주변에는 병 고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였고, 따라서 예수님 얼굴이라도 보려고 갔던 삭개오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바라 보시면서 "삭개오야!!! 이리 내려 오너라!!!" 이렇게 부르신 겁니다!!!

주일 학교에서는 잘 이야기해 주지 않는 장면인데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도, 모세를 부를 때도, 야곱을 부르 때도 이렇게 부르셨지요... 사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많았습니다. 삭개오는 그냥 "세리와 창기의 친구"로 소문난 그 분 얼굴이라도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 갔는데 예수님이 삭개오를 바라 보면서 "삭개오!!! 이리 내려 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어!!" 이렇게 말하신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국주의 경쟁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
"베풀지 않아서 문제다"
"행하지 않아서 문제다"
"관계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세리와 납세자가 편견을 버리고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이런 교육 없이
예수님이 그 집에 머무시는 동안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바로 그날
"재산 1/2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고"
"자신에게 착취당한 피해자에게 4배 보상하겠다"
고 예수님 앞에서 말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에,
누가는 결국 다른 복음서에 없는 이 사건을 꼭 기록해서 후세의 믿는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구요....
(이날 현장에 있었던 베드로는 나중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유명한 말을 확신을 갖고 말하게 됩니다)

사실 많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예수님에게서 감동 받았으면 그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관계의 혁명"에 대해서 설명했을까요?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고 하셨을까요? "제국주의 경쟁에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해라"고 하셨을까요? "납세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세리와 납세자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글쎄요... 하지만 누가복음 18장에 나온 사건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을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오셔서 삭개오가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깨달은 결과가 아닐까요? 빛이신 예수님이 그날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 오셨지요. 삭개오가 찾아 간게 아니구요!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라고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학자들에게 조롱받던 예수님이 궁금해서 기웃거렸는데 예수님은 삭개오를 부르셨지요. "차별 받는 손가락질 받는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다들 듣게 큰 목소리로 말하셔서 삭개오가 깜짝 놀랐지요!

그런데...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셔서 제자들을 걱정하게 만드셨지만 (돈, 물질 싫어할 사람 없지요?) 하나님의 뜻이면 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바로 19장 처음 삭개오를 통해 그 예를 보여 주셨습니다!!!  항상 예수님은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들어 우리들에게 설명해 주시는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신학생들부터 목회자들까지 예수님께 능수능란하고 예수의 사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접할 줄 아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를 수십 년간 살펴볼 때 예수님 설교를 잘하시는 분을 별로 못 봤다. ... 예수의 사건을 더 많이 연구하고, 예수를 더 많이 묵상하고, 예수의 복음에 장착된 설교가 나와야 설교가 좀 설교답고 이런 설교가 있는 예배가 예배다워진다. 현재는 일반 세상의 윤리나 도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성도들의 삶이다. 삶이 진짜로 구별되고 그 안에서 다른 것이 나오려면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의 사건에 능수능란하고 성경 복음에 능수능란한 사역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 성경 본문과 복음에 능수능란한 목회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총신원보 201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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