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남서울 톡톡

빌레몬서 1:1-3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제목: 동역자인 빌레몬과 그 집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 거듭나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과 화평케 했습니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교회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요?

성도로서 모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빌레몬서는 짧지만 참 매력있는 서신입니다.

 

많은 사람이 서로 담벼락을 치고 삽니다! 그리고 계속 그 담벼락이 높아집니다. 차별과 대립이 심해진다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려서 구원하심과 함께 모든 장벽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을 함께 무너뜨리셨습니다. ->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의 아주 중요한 축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나라, 성별, 신분, 지위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없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가 죄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하나의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 죄가 왕노릇하는 질서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다른 질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차별이 존재하는 이 세상, 예수님께서 인간과 인간이 하나인 새로운 질서인 공동체를 가지고 오셨다. 무수한 차이, 차별이 있음에도 뗄레야 뗄수 없는 연합됨과 하나됨이 주어집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하나됨은 신비한 연합입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신비한 연합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연합은 부부뿐만 아니라 예수와 교회안에 성도와 성도안에도 좋재합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됨입니다.

 

그냥 하나가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성도와 내가 하나되게 하심을 지켜내라라고 합니다. *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화평한 관계가 되어 돌아오게 합니다.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받으라라고 합니다. (오네시모를 나 바울에게 하듯이 대해주라라고 합니다) -> 하나되게 하신 질서입니다.

여기서 화목한 관계는 화목한 주인과 화목한 종의 관계가 아니라 바울과 빌레몬처럼 빌레몬과 오네시모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편지를 보내는 이는 바울과 디모데입니다.

 

죄수 바울이 빌레몬과 자매 압비야, 군사된 아킵보, 골로새교회에 보냅니다 수신자가 깁니다.

 

1: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건 말 한하겠다고 합니다. 빌레몬은 부자였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빌레몬이 바울에게 돈을 빚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통해 거듭났고 영적인 빚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아들이지요.

 

에바브라(목회자)와 함께 빌레몬이 교회를 세웁니다.

 

바울의 사랑을 받은 자 빌레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 빌레몬...평신도인데 동역자로 들립니다. 빌레몬의 원래 뜻은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랑을 받아봐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받은 자가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가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교회를 기둥같이 섬기는 자였습니다.

20220720_주일_빌레몬서1장1-3절.jpg


2절에 압비야가 나오고 있습니다. 압비야는 와이프? 또는 가사를 총책임맡은 사람입니다. 압비야를 자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특별합니까? 다른 남자의 부인을 자매로 부른다니요? 수년전 제가 내수동교회 청년부에 갔는데 종부 형제라고 불렀는데 살짝 오글거리고 거부반응이 있었는데요, 2천년 전이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여성에 대해 하대하던 시대였거든요.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자 영혼의 반을 가지고 여자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여자를 하대하곤 했습니다.

 

형제,자매라는 표현은 집사, 권사보다 서로를 일컫는 가장 흔한 호칭입니다. 압비야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관계의 혁명은 바로 복음이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입니다. 성도는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신분차별도 없습니다. ,주인과 같이 계급사회에서 자매라고 부른 것처럼 높낮이를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라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십시오. 성적인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다름은 존재하나 차별과 열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과 말했습니다. 여자와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의아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유대인과 달리 사마리아인을 벗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로 대하셨습니다.

교회를 이루고 성도, 자매가 된다는 것은 세상 눈이 아닌 예수님 피로 우리를 묶어놓으신 줄 알고 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무시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다른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상처받고 우리 교회로 새로오는 신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좀처럼 마음을 오픈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심합니다. 다 내려 놓으십시오. 의미가 없습니다. 비판,실망하거나 다치지 않고 하나이기 때문에 견뎌내고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대하여 하나됨을 지켜내야 합니다

 

부부가 돼서 가장 잘 한 것은 안 헤어지고 지금까지 산 것입니다.

나 자신도 부부가 된 것을 운명처럼 느꼈는데 힘들더라고요. 좌절되고 고통스런 생각도 하고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하나되는것에 힘쓴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됨을 지켜낸 것이 은혜였습니다.

************

     은   혜

************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X2

************

 

어떤 때는 보고도 못본척하고 감당해 내면서 갈 때 하나님의 다른 세계가 보이게 됩니다.

공동체 안으로 쑥 들어오십시오. 하나되게 하심을 지켜내고 절대로 교회를 왔다갔다만 하지 마십시오.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아킵보가 나옵니다. 함께 군사된 아킵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용사입니다. 아킵보는 아들이거나 장로님인 것 같습니다.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역자 인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이 교회들은 이단이 많아서 고통은 입었었습니다.

 

직분 받으면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공감합니다. 저도 목회의 길을 징징대며 왔습니다. 직분을 그만둬야 겠다는 분은 좀더 하세요^^

저도 그렇게 평생을 ...울고...그렇게 20년 넘으니까 이런 날이 오는 구나 싶습니다.

 

목사되어 첨했던 고민이 하나님 제가 목자입니다이것 때문에 깊이 좌절하고 절망했는데 지금은 좋아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좋아서 감격이 있습니다. 나에게 섬길 교회를 주신 것이 감격적입니다.

 

직분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주님이 아십니다. 절대로 그만두지 말기 바랍니다.


어려운 험한 세상에 살아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준 새로운 질서를 따라 구별되고 하나님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런 세상을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새로운 질서에 속한 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면 어떨까요?

 

3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은혜없이는 못삽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은혜없으면 우리 모두 믿는 사람답게 살수 없습니다. 평강은 어떻습니까? 은혜가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대, 호의, 분에넘치는 호의라면 평강은 은혜가 임할 때 열매맺는 것이 평강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내가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스스로 볼 때 잘 살아왔다고 느끼고 싶어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합니다.

 

조건도 없이 값진 선물을 값없이 받음을 경험하며 자유를 얻게 됩니다. 1) 남으로부터의 자유 2) 나로부터의 자유, 이 자유와 함께 평강이 옵니다.

 

평강은 문제없는 삶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도 빼앗기지 않는 평강 참된 평강을 누리가 됩니다. 또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한테 한 일을 생각하며 무너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나에게 베푼 은혜가 깨달아지면 예수님이 나에게 한것처럼 나도 다른이에게 베풀게 됩니다.

 

요즈음 세상은 얼마나 부요합니까? 그러나 정서장애를 겪고 관계가 깨어짐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파다합니다. 서로 무관심한 시대의 정서와 억울하고 분노로 앙갚음하고 싶어하는 시대, 불화와 소외가 이 시대의 키워드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은혜와 평강을 소비하면서만 사는가요? 아니면 그 은혜와 평강을 유통시키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평강이 흘러가도록,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을 살려내고 회복케하는, 그렇게 빚어지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복을 소유하거나 소비하지 마시고 흘려보내는, 유통시키는, 복의 근원, 통로가 되는 삶되게 하소서.

********************   

  아 하나님의 은혜로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 나는 확실히 아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 나는 확실히 아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 나는 확실히 아네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 곳도 /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 나는 확실히 아네

********************

번호 제목 날짜 이름
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공지 [공지] 스마트폰>파일첨부 기능 추가되었습니다. [2] 2014.09.12 관리자
공지 광고글, 광고성(교회포함) 글, 비방글,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2014.07.18 관리자
1632 차별하라 차별하라 그리고 분별하라?? 2022.09.29 김용재
1631 제 24회 파랑새 백일장 file 2022.09.28 남서울교회
1630 9월 18일 주일 예배 2022.09.18 서세진
1629 다문화선교부 유학생 사역팀 중앙대학교 isf 개강모임 [2] file 2022.09.07 이지영
1628 성찬식 및 중보기도헌신서약(주일저녁찬양예배)-2022.09.04 file 2022.09.05 남서울교회
1627 바울처럼 기도하고 싶어요... 그런데 2022.08.27 김용재
1626 기초제자양육수료식 (15기) file 2022.08.24 남서울교회
1625 교육관 신축에 대한 어쭙잖은 생각(02) 2022.08.16 한기웅
1624 요셉처럼 용서하고 싶어요 하지만... [1] 2022.08.11 김용재
1623 교육관신축에 대한 어쭙잖은 생각 01 [2] 2022.07.27 한기웅
1622 제국주의 경쟁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했던 편지 2022.07.21 김용재
» 2022년 7월17일 설교말씀 정리: 동역자인 빌레몬과 그 집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 file 2022.07.20 배정은
1620 2022 설립47주년 기념 이웃초청음악회 file 2022.07.04 남서울교회
1619 2022년 봄학기 종강세미나 file 2022.07.02 남서울교회
1618 그리스도의 떡 2022.06.25 안예준
1617 한 사람의 이야기 2022.06.24 안예준
1616 마태복음 11장 2022.06.18 안예준
1615 세이레 평화기도회 file 2022.06.13 남서울교회
1614 분립 개척 파송 예배 file 2022.06.10 남서울교회
1613 2022년 중보기도 세미나 [1] file 2022.05.26 남서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