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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7편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오늘 시편은 찬양시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민들에게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자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단순히 듣기 좋은 어구를 내뱉는 것이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온 몸과(손바닥을 치고, 1절) 온 마음으로(즐거운 소리로, 1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께,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1절)

나의 찬양을 돌아봅니다. 아니 내가 찬양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어떤 날은 아이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찬양의 한 부분이 생각나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찬양일까요?? 나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도 잘 하지 못하지만 기도를 한다고 하면 항상 빼놓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찬양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가끔 병원 직원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내 방 문을 열 때에 심장이 심하게 쿵쾅 거리며 '무슨일이지?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님 병원을 그만 둔다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나?' 찰나의 순간에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하나님 제발 별일 아니게 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를 속으로 외칩니다. 그러다 막상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휴...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안도의 마음속 기도(?)를 합니다. 이런 것들도 찬양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이런 것들을 '찬양'이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저는 정말 하루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1절에 보인 시인의 찬양의 특징을 본다면 나의 이러한 것들은 찬양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시편 47편의 찬양시를 보면서 나의 찬양이 어떠해야 할 지를 배우고, 또 따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기와 어린이들은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갑니다. 마음이, 자세가, 먼저 되고 행동이 따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타락하고 연약한 인간이란 존재가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마음과 자세가 잡히기까지 기다렸다가는 나의 생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송은 단 한 번도 울려퍼지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합니다.(2절). 그는 지존하신 분입니다. 그는 두려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온 땅의 큰 왕이십니다. 내가 느끼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사실 나는 다르게 하나님을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지존하지 않고 한계가 있으신 분이라고,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못하시는 것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려우신 분이 아니라 한없이 기다리시다 못해 내가 원하는 것만 받아내고 싫은 소리 하나도 못하는 호구쯤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온 땅의 큰 왕이긴 커녕, 왕인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고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거울 쯤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이런 패역한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찬양이 나올 리 없습니다. 하지만 따라 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지존하신 분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와 세상을 심판하실 두려우신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땅의 모두가 섬겨 마땅한 진정한 왕이라고 고백부터 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온전히 따르는 부족한 고백이지만, 그저 남(시편기자)이 하는 고백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한 고백과 인정이지만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찬송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비록 따라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시작부터 해야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가나안 족속들을 복종시키시고, 야곱의 자랑거리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3-4절)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은혜의 순간, 주신 복을 세어보아야 합니다. 그가 내게 행하신 일들을 늘 기억하고, 되 뇌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만큼 찬양이 없는 나에게 찬양을 하도록 북돋아 주는 동력도 없을 것입니다. 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나의 삶을 찬양으로 채우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시는 장면을 그리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왕의 즉위식을 본 적이 없는 나의 머릿속에는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으로 향하는 스타의 모습을 대입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오르실 때에 환호하는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5절) 주님이 보좌에 오르실 때에 오케스트라의 온갖 악기들이 크게 울려 퍼집니다.(5절 후) 하나님의 영광에 취한 저자는 끊임 없이 찬양 할 것을 만민들에게 외칩니다. 6절 한 절에만 "찬송하라"라는 명령이 4번이 반복됩니다. 찬양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는 온 땅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가 시로 찬송하라고 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7절) 시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장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생각을 표현하되 함축적이고 운율이 있게 표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로 찬송하되 지혜의 시로 찬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Sing ye praises with understanding"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찬양은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그저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과는 다른 것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 길게 이것 저것을 자세하고 세밀하게 아뢰는 기도와도 다른 것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되, 그것을 함축하고 운율이 있는 언어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꼭 시를 써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저 머릿속에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에요' 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찬양이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입을 벌린다 하여도, 그저 가사가 뭔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멜로디에 취해 부르는 유행가 같이 찬양을 흥얼거리거나, 아무 깊은 성찰 없이 내가 겪은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 '아멘' 탄성을 지르는 것 만으로 찬양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시로 하는 찬송을 드릴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 드리는 것. 그가 받아 마땅한 것을 그에게 돌려 드리는 것. 그것이 찬양인 것 같습니다. 왕이란 존재를 경험한 적도, 섬겨보지도 못한, 현대를 사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충신 역할 놀이' 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모방과 놀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와 어린이가 성장하며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는 충신의 역할을 연습하듯 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충신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왕을 영원히 찬양하고 찬송하며 선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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