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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저는 오늘 본문의 큰 주제에 대해서 조금은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단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자비로움을 보이라(35-36)는 말 다음에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란 말씀도 하셨지요(37-38)


이전 단락과 이어서 보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유명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매일성경의 본문이 오늘 본문을 이렇게 잘라 낸 것 때문에 오늘 본문은 또한 다른 큰 주제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인도하심배움’, ‘따름의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비유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시작됩니다.(39) 바로 전 단락과 분명히 내용적 단절이 생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과는 그 결을 달리하는 내용임에 분명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둘은 함께 걸려 넘어지고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되겠지요. 이것은 올바른 인도자를 만나야 한다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비유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선생과 제자에 대한 말씀은(40)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 인도자를 가리킵니다. 비록 청출어람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만약 완벽한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보다 더 나을 수 있는 제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제자가 완벽해지는 경우에만 (이론적으로) 스승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겠지요. 완벽한 스승, 완벽한 인도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발 맹인과 같은 것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을 따르고, 배우고, 완벽함에 이르러 자신에게까지 도달하라는 도전의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이제 매우 매우 유명한 남의 눈의 티, 네 눈의 들보의 말씀이 나옵니다(41-42). 예전에 이 말씀을 대할 때에는 늘 위에 설명 드렸던 남을 판단하지 마라라는 교훈의 아래에서 이 말씀을 이해해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 설명했듯이 전체적인 말씀의 주제가 올바른 인도자를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이 말씀은 통상적으로 이해해 왔던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남을 판단하지 마라라는 교훈 외에 섣불리 다른 사람의 인도자가 되려 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 더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지금도 지구, 아니 세상은 편평하다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론을 자랑스럽게 과학적 근거라는 것을 대며 게재한 수많은 영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숫자 놀음일 뿐이며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고(지평선이 둥글어? 편평하잖아?) 느끼는 (지구가 시속 1600km로 자전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고? 헛소리!), 경험 그것만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근거이며 수학을 근거로 한 과학적 이론은 모두 음모라고 생각을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추종자들이 생각 외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그 어떤 진리보다 더 우선하고 중요시 하는 존재들입니다. 자신이 육아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자기 아이 하나, 둘 키운 경험을 마치 진리의 말씀인양 선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교회에 대한 경험, 공동체에 대한 경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부딪히고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겪었던 경험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귀하고 소중한 경험들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진리인 것인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하거나 권면을 한다는 명목으로 나의 경험을 강요하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고 예수님께서 경고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라는 42절 말씀은 단순히 남의 눈의 티를 보면서 그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넘어, 그 티를 빼게 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다른 사람(쉽게 내가 그렇게 인생에 관여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배우자’, ’자식이라 할 지라도)의 인생에 관여하여 그를 인도하고자 시도를 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 눈에 들보를 뺀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시며 남의 인생에 인도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제 눈에 있는 들보를 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 있는 들보가 잘 빠질 리 없습니다. 만의 하나 들보가 정말 빠진다면 밝히 보아 알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인생에 관여하여 인도자가 되실 분은 완벽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에서는 못된 열매를 맺습니다.(43,44).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행동이, 악한 마음에서는 악한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45) 그럼 도대체 그 선한 마음을 어떻게 쌓아야 한단 말입니까???


46절의 말씀은 단도직입적으로, 정통으로 결론에 돌진합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바로 예수님께서 말하는 것을 듣고 따르는 예수를 인도자’, ‘스승으로 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나의 경험, 세상의 교훈들, 처세술, 온갖 것들이 나의 인생길의 방향타와 선장, 주인 행세를 하려 시도하지만 굴하지 않고 그 자리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게만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섣불리 나의 어줍잖은 인생 경험으로 다른 사람 인생의 인도자 역할을 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그의 인생의 인도자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세워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도자로 하는 삶은 세상이 보기에 연약해 보입니다. 패배한 길 같습니다. 에단 호크가 고뇌하는 신부의 역할을 맡아 주연한 폴 슈레이더 감독의 “First Reformed(퍼스트 리폼드)” 라는 영화에서 청년 대상 모임을 인도하는 주인공 신부에게 한 청년이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공하면 안되는군요루저들을 위한 종교인가요?????” 주인공 신부는 이 이야기에 화가 나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세상에서 경험하는 소위 성공하는 사람들의 법칙에 더 열광하며 믿음직함을 느낍니다. 이런 시기엔 주식을 해야 해집은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못살지도 몰라적당히 윗사람에게는 잘하고 아랫사람은 잘 부려야해편법이긴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의지하는 그런 것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탁류에 휩쓸려 무너지고 말거야나를 따라 오너라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행해라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무너지지 않을거야”(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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