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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아주 우연히 화종부 목사님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다고
알려진 
(강해설교의 모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탕자의 비유" 설교를 읽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잘 살펴 보니까,
성경 해석 관련된 아주 흥미로운 원칙 2개가 나옵니다.
혹시 성경 해석을 놓고 고민하는 많은 분,
특히 성경 해석이 중구난방이어서 정말 이해하기 힘들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들리고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서 현실 적용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2가지 원칙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개 지침이니까 간단하네요.!!!
정말 아주 굉장히 좋은 지침인 것 같습니다. 구글 번역기 덕분 많이!! 보았습니다
https://www.monergism.com/thethreshold/sdg/prodigal.html의 요약된 내용입니다
 ******************************************************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이 비유만큼 더 잘 알려지고
더 친숙한 비유도 없습니다. 이 비유만큼 종교적 토론에서
자주 인용 되고, 이 비유만큼 어떤 논점의 근거로 사용된
비유도 없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너무 많이 사용되었고,
너무 많은 결론들이 이 비유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로 모순되는 수 많은 주장들이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 근거하고 있어서
,
우리는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탕자의 비유를 그렇게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는
그런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 유명한 비유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비유를 면밀히 살펴 보면, 우리는 아주 근본적인
(성경 읽고 해석하는) 2개의 원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비유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성경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기본 진리와 모순
니다.

(누가복음이 있는) 신약은 한 덩어리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신약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완전하고
흠 없는 계시이며, 각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를 완성합니다.

따라서 신약에는 성경의 다른 기록과 모순되는 기록이나
사건 역시 없습니다. 물론, 나는 내가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
다만 내가 전하는
(=성경 해석하는) 것과 다른 성경 기록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합니다
.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들이 어긋나거나, 아니면
바울과 다른 제자들의 가르침들이 상충된다는
(수백 년 전 시작되었던) 소위 ‘고등비평’이 나오기까지,
사람들은 성경과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모순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지금도, 그들 고등비평가들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예수의 종교"와 "바울의 신앙"사이의 간극을 조사하고,
자신이 오류를 남들에게 강요하려고 합니다.
오늘밤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제 관점은 이렇습니다. 성경은 성경과 비교되어야 합니다.
모든 새로운 이론/주장은 성경 전체에서 발견되고
교회에서 정리된 교리와 주장들에 의해 검증되어야합니다.
이 단순한 규칙을 기억한다면, 대다수의 이단들 결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규칙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비유를 설명할 때
어떤 잘못된 결론을 도출할 위험을 항상 피해야합니다
이 원칙은 탕자의 비유뿐만 아니라 모든 비유에도 적용됩니다.

예화는 결코 진리(=성경) 전체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예화는 진리가 제시하는 내용을 배우고, 그 성경 진리가
가장 강조하는 핵심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의 목적,
즉 ‘왜 예수님이 예화를 드셨을까?를 이해한다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강해 설교--성경이해하기-- 원칙 참조 하세요!)

이제  ***앞에서 제시한 2개의 원칙을 제대로 기억하고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탕자의 비유에서 이상한 주장과 아이디어들 대부분이 나왔다
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런 엉터리 주장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15장에 나오는 다른 두 비유까지 한 묶음으로 해석했다면,
정말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왜 그들은
다른 2개의 비유에서도 잘못된 결론을 내지 못했을까요?
왜 그들은 15장에 나온 3개 비유를 함께 묶어 결론 내지 못했을까요?

나아가, 우리가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따르고 믿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비논리적입니까?
얼마나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까? 그런 주장들에서,
설명자 자신의 편견과, 욕망과, 상상력을 제외하고 나면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이제 잘못된 결론을 탕자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의, 심판, 분노의 하느님과 15장의 아버지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이려고, 탕자의 비유를 끊임없이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통일 비전을 전하는 많은 분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

그들은 "아버지의 진노를 말하지 않고, 탕자의 행동에
대해 아버지는 단지 사랑, 순수한 사랑, 사랑을 베푼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이 비유에서 나온 아주 잘못된
결론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그런 "정의, 분노, 심판"은 하나님께 전혀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정의,심판,분노를 강조하셨다는 사실 또한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틀리게 해석하는 예를 듭니다.
이 비유가 "회개의 절대적 필요성을 약화시킨다"는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집으로 돌아 왔을 때조차도 여전히
탕자였다고 주장하는 설교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탕자는 소리 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를 감동시키기 위해서, 전혀 믿지 않는 단어를
반복했다고 그들은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속임수를 반복했는데도 아버지가 용서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설교자는 결국 아버지가 회개에 관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개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아버지가무조건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회개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하게 거짓된 주장은
(아버지와 탕자가 직접 만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예수님을 통한 속죄에 대한 고백은
그저 형식이고, 바울의 율법주의적 가르침에서 나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비유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아무 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서, 아버지와 먼 나라에서 돌아온 탕자 간의
(예수님 같은 중재자가 없는) 직접관계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탕자의 비유에서 아무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탕자의 비유가 예수님이
화목제(=죄를 없앤) 가 되었다는 기본 진리를 대체한다
고 해석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만약 모든 다른 비유에
대해 이런 식의 논리 전개를 적용한다면,
그 결과 우리는 완전한 혼동되고  많은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비유는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우리 주님은 제가 조금 전 말했듯이,
***비유를 잘못 해석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세 개의 예화를 한 패키지로 말해 주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설명하는 사람은
3개의 비유를 같이 읽고, 3개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전체로 묶어 전해야 합니다

처음 1~2절은 15장 전체 상황을 파악하게 도와 줍니다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을 가까이서 그에게 들으니
바리새 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 가로되`
이 사람은 죄인을 영접하여 그들과 함께 먹으라 하는가? '(눅15: 1-2).

그렇다면, 15장 탕자의 비유의 목적은 아주 분명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불평에 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리와 창기를 위하거나, 누구든지 얼마든지 죄 짓고
돌아 올 수 있다는 내용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나 성경 읽는 이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각 비유의 끝 부분에 어떤 도덕적인 결론까지 제시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세리들과 죄인들에게까지 미치게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범위와 도달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라
는 것이 이 비유를 주신 이유입니다.

그 주제에 대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생각과 대조해 보면
비유의 목적이 아주 잘 드러납니다.

15장의 처음 두 비유에 죄인을 찾고, 그 사람을 찾고 구출하기 위해
무한한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활동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하나님과
모든 천국의 기쁨을보여주기 위해 비유가 사용되었다
는 말입니다. 한 영혼을 일일이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심정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가치 없어 보이는 바늘 하나를
다시 찾고 기뻐하는 과부의 심정이며,
형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포기했던 아들이
돌아와서 기뻐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나옵니다

(*** 예수님은 3개의 비유를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위선자,
종교를 이용한 권력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들려 주셨습니다

예화를 들어야 했던 대상자는 그 자리에 있었던 "소위 죄인들"인
창녀와 세리가 대상이 아니었다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아주 잘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렇게 구수한 이야기 3개를
다들 이해할 수 있게 들려 주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끝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예화에 나온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길게 잘 설명하시지만,
여기서 줄입니다

혹시 성경 설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혼동될 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지침을 기억하시면 큰 도움 받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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