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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알고싶어요 내가 겪은 6.25 (2)

2017.10.30 16:56

오우현 조회 수:135

전쟁이 한창인데, 나는 뒤늦게야 한국전쟁의 시발을 알게 되었다. 남한군이 북한군에게 속았디고나 할까. 유엔군에 의하여 해방을 맞이한 남한은 1947년부터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어 확장일로해가고, 1948년까지 한국에  파견된  유엔군은  남한에 그대로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군은 북한군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훈련시켜놓고  김일성을 조종핶다. 그에 따라 소련이 북한에서 후퇴했으니 미군도 한국에서 철수 해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지금처럼 남한의 좌익들도 날마다 미군철수를 시위 또는 데모로 사회를 혼란시켰던 것이다.

1948년, 월리엄 로어트 준장의 지휘하에 미국인 일부 고문단과  미군과 터키군 5만명 정도만 한국에 남기고 연합군은 한국 방위를 포기하고 완전히 철수해버렸던 것이다. 그후,,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가며 열심히 남침준비를 했던것이다. 연합군이 한국을 떠날 때 무기인들 놔두었겠는가. 인적 자원은 아직 쌩퉁하고, 군비자원이 전무상태인데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남침을 단행해버렸다


이런 때 어덯게 해야 할까?  성셩은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마7::7-`9)" 라고 기록됐다. 그 밀씀만  믿고 약 1.000명의 목사 장로들이 부산 초량교회에 모여 구국기도회를 연 것이다. 당연히 이대통령도 참석한것이다.마침내 유엔군 철수를 단행한 트루먼 대통령이 우선 미국의 해군, 공군을 한국전쟁에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과 함게 한국 전쟁에 파병을 명령했고, 얼마 후에는 육군을 파병하면서 유엔에 호소하여 16개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도록  유엔군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국을 사랑하신것이다.


유엔군이 참전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은 대구와 부산의 일우만 남겨두고 거의 전 국토를 인민군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그야말로 한국은 백척간두의 신세가 되었다. 빨치산(별동대.유격대)들은 방방곡곡에 다니며 우익측 가족과 부자들, 군, 경찰 유가족을 죽이기 시작했고, 조세정책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벼알 꾀알을 헤아리기도 했다. 남녀 청년들을 만나는대로 붙잡아다 산 속으로 데리고 가서 훌련시켜 인민군을 양성했다.  특히 손동인 등 그들의 사상을 거부하는 학생들과 물론,목사들을 희생시켰다. 내가 아는 손장노님의 가족은 8남매 자녀들을 두었는데 큰아들과 부인만 남기고 6명의 가족을 몰살한 것이다. 공포의 세상이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휴전선 전투 외에는 낙동강 인근에서 제일 전투가 심했다. 대구를 빼았기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밖에 갈 곳이 없었으니 얼마나 각축전이 샘했겠는가.! 따라서 군인들 죽엄도 그곳에서 쌍방간에 많았겠지만 인민군 피해는 그곳에서  아군보다 훨신 많았다고 한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듯이 상육작전 이아기가 들려왔다. 아마도 김성은 국방장관이 해병대사령관이 되기 전에 포항상륙작전에 성공하므로 대구사수에 큰 공이 되었다.  며칠 후에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어 성공했다고 하는 보도는 경천동지할 놀라움이었다.  얼마나 쾌거인가.  인천연안을 상륙함에 있어 성공확율이  1/5000임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은 모험적인 전술을 가해 성공하였다. 그해 9월 28일에  서울 중앙청 국기 계양대에  올라가 깃봉 에 태극기를 매달았다. 한 나라의 원수인 이승만 대통령의 기분은 어떻했을까.


그렇게 혁혁한 전투대열은 동해안 전선까지 맞닿게되외  유엔군과 한국군은 기대이상으로 빠르게  북진을 계속하는데 북에서 남진하는 보급로가 차단되어 이미 남진해 있던 인민군은 독안에 갖친 쥐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인민군은 지리산 등의 산속으로  입산한하여 개릴라전의  많은 에피소드와 소설을 자아냈던 것이다. 산속마다 감춰두었던 무기고가 불타고, 천근 만근의 다발총을 메고 후퇴하는 인민군을 보는 순간 저들도 우리동포인데...죽음을 향해가는 길이 너무 처량했다.


 아군의 상륙부대가 영구상륙보다는 목포 등 작은 항구도시에 주둔한 군경들이 우선 가족의 생사가 알고 싶어 일시 아침에지방소재경찰서에 가족을 만나고 밤에는 후방으로 퇴각해버렸다. 밤 공화국이 여러날 계속되는 동안에, 밤에는 인민공하국 부대가 내려오고  낮에는 대한민국 부대가 진주하는 악순환의 순간에 수많은 경찰서가 불타고 동시에 그 안에 갖혔던 죄수 (우익인사)들이 불타죽었고 혹은 굴비(조기)처럼 일일히 묶여 산 속 깊은 곳으로 끌려가서 총살을 당한 것이다. 어느날, 밤  나도 그런일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듣고, 날선 식칼을 준비하고 혹시 우익인사들이 묶여나가는 일을 목도하려고 2층에서  밤을 꼬빡 새우며 눈여겨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동트기 한시간  전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20명 정도가 엮인채 줄줄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혹시 설맞은 총에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사람의 묶인 노끈을 잘라주기 위해서 였다. 가던 중 내가 아는 장로님 아들을 만나 물어보니 자기 아버지가  총살당한 것을 확인하고 온다는 말에 낙심하면서도 현장에 가보니 내 칼이 필요없이 바위덩이 같은 침묵만이 시체를 덮고 있을 뿐이었다.


동해안 전선은 함경북도까지 서해안과 중부전선은 압록강 근처까지 북진해서 대통령에게  바칠 대동강물까지 담았다는  정보가 있어 진짜 통일이 되나싶어 몸이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인해전술이 남으로 남으로 뻗치고, 아군은 다시 후퇴한다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늘 중공군이 참전할거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휴전하라는  데모가 일고 ,소련에서 휴전협정제의를 하는가 하면 유엔군도 휴전을 원하고 있었다. 다만 이대통령만 우리끼리라도 기어이 북진할테니 작전권을 우리에게 넘겨달라고  고집하여 미국과도 대립각을 이루었다. 미국은 행여 이대통령 때문에세계 3차전쟁이 일어날까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거제도 수용소안의 포로중 석방되면 이북으로 가지 않겠다고 따로 수용된 포로수용소가 있었다.그런데  국제감시단 허락도 없이 이대통령 단독으로 그 수용소 문을 여어주어  몇 만명의 포로들이 자유의 몸이 된 사실이 세게를 놀라게 했다. 너무 고집이 쎈 이대통령을 이기지 못해 미국 대통령이 놀라서 흥분했다. 인민군의 인해전술에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과 한국군은 딜렘마에 빠져 서울을 다시 후퇴한 것이 소위 1. 4후퇴다. 1.4후퇴는 1950년 12월부터 1951년 1월 사이에 중공군에게 서울을 내주었다가  다시 아군이 수복했다. 북위 38도선에서 중공군과 53년 7월 27일까지 휴전 협상을 하는 동안에 땅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세계 제3차전쟁이 낡까봐 고심하면서 현재의 점령한  지도상에서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총성이 멎어  냉전상태에 머무른 것이다.  



3년동안의 전쟁 피해를 인명 만 소개한다. 사망자만  대강 발표하면 한국민간이 약4만명,   전쟁미망인20만명,  전쟁고아가10만명,  한국국인 이 ; 약 5만9천명,  실종자가: 82300명,  UN군이 약 3만7천명,  북한 민간인 약 200만명,  북한군인이  52만명,  북한과 중공군 : 52만여명이었다.  전쟁시대와 지금을 비교해보자. 하나님께서  외국인까지 그렇게 희생시켜가면서  대한민국이 김일성주체사상의 고통에 스며들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아직도 철없는 동포여 깨달을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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