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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이야기 내 인생의 패러다임

2017.10.25 23:08

오우현 조회 수:286

내 인생의 패러다임(Paradigm)

 

패러다임이란 말은 많이 듣고 쓰는 말이면서도 우리말로 꼭 집어서 해석하기 어려운 말이다. 영한사전을 보면 Paradigm 이란 문법에서 품사 어형 변화표, 또는 예, 모범, 전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태여 그 불편한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내가 써나가는 글의 내용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강북지역교회에서 17년 동안 교회생활을 하던 중 남서울교회가 있는 강남으로 이사와 살면서 인생살이의 패러다임이 달라졌음을 느꼈고, 교회생활 중에 더 확연했다. 남서울교회 이외의 교회생활에서는 어느 교회로 옮겼던지 거의 맞지 않는 패러다임이었으나 남서울교회로 1978년 이적한 이후부터는 내가 원하는 긍정적 패러다임의 삶을 살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적한 지 6년 후 1984년 사무실을 책임지는 생활에서 구체적인 남서울 교회의 패러다임을 느껴왔다.

 

이전 교회에서는 지적 수준이 전교회적으로 낮았고 발전을 모색하는 속도가 느리고 너무 폐쇄적이었다. 믿음의 강조가 너무 억압적인데다가 목사들의 권위의식이 너무 강했다. 나는 D교회를 지을 때 건축회계 직을 수행하면서 건축헌금이 턱없이 모자라 사글세방사리에서 전세방을 구하려고 저축한 금액을 몽땅 건축헌금으로 바쳐버렸지만 자율적으로 했기에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교회를 지으면서 장로장립을 앞두고 건축헌금을 작정시키는데 당회장 목사가 피택 장로들을 한 사람씩 당회장 앞에 앉히고 헌금 작정기도를 하는데 목사가 헌금액수를 정해주었다. 그 때 이런 패러다임의 헌금제도는 안 되겠다 싶어 불만이 생겼다.

 

남서울교회에 와서 교회생활하기에 편한 것은 자율적인 헌금제도, 권위의식이 없는 교회,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랑정신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교회, 교회 경상비 중에서 45%를 교회 밖으로 지출한다는 목표(나중에 30%정도로 축소됨)를 세웠던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중대형교회마다 소유하고 있는 수양관, 교회 묘지 한 곳도 없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자선가들도 많이 나왔다. 어느 주일날, 홍 목사가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란 주제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그 다음날에 어느 여 집사가 현금 100만 원(30년 전) 을 사무장인 나에게 맡기면서 요긴한 곳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 돈은 구제부를 통해서 금촌에 있는 나환자촌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 신도들은 사무장인 나에게 봉투를 맡기면서 전달하도록 부탁해서 기탁자의 부탁대로 기탁자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전달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은혜가 넘치는 교회에서 사무장 직을 맡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늘 마음이 편했다.

 

내가 사무장으로 있기 전에 교우들로부터 나의 자녀들이 암암리에 학비보조금을 받은 적이 있어 그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일반 교회에서는 당회 시 부목사가 동석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나 남서울교회에서는 부목사도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권을 가졌고(결의권은 없을 뿐) 화기애애했다. 내가 사무장이 되기 전 몇 년 동안은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나 부장까지 맡았는데 양승헌 목사가 전도사여서 더욱 나와 뜻이 맞았다. 담임목사가 젊어서 다소 실수가 있더라도 웃음으로 넘기는 분위기여서 좋았고, 장로나 특별한 평신도도 강단에 세워 설교 할 수 있게 한 것도 타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남서울교회 사무장이 되면서 생활비 문제도 걱정 없게 해주었고, 막내를 고등학교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교회에서 장학금을 부담해주어서 내가 종전에 가졌던 신앙생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목표했던 목사는 못되었지만 교회 행정을 맡아보는 것, 교역자들이 목회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사무장이 할 일이라고 여겼다. 세상적인 것은 전혀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이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교구장(부목사)과 구역장, 그리고 구역원들이 1년에 한번 씩은 가정심방을 했다. 그때의 교제는 정말 신앙적이고 재미있었다. 나는 의무적이 아니라 자진해서 한 교구에 한 번씩만 그 교구심방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빨리 익숙해졌다. 다른 교회에서는 주일 대예배가 끝나 귀가 시 목사는 물론 장로들도 같이 서서 성도들과 대면 악수를 하면서 정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장로이면서 사무장이기도 하여 더욱 성도들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어 주일예배가 끝날 때마다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나 다른 장로들은 같이 서주지를 않아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54세의 장노로 사무실의 얼굴마담으로 앉아있을 때에 성도들이 나이 지긋한 장로가 사무실 주인이 되니 기쁘다고 한 마디 씩을 아끼지 않았다.

 

85년부터 65세 이상의 남자 소망회를 조직하여 25년 동안 매주 목요일이면 같이 모여 성경공부를 지도했고, 효도관광 등 남녀 합동행사를 할 때는 회원들이 나의 주관하에 하고 싶어 해서 남녀간 소망회 거리감이 없었다. 당회에서 노인대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 노인들 소원이 죽은 후에 비석에 남서울 교회 집사였다는 이름을 넣어달라고 소원하여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90년대 말까지도 남서울교회는 젊은 세대로 모두가 직장에 몰두했다. 초상 시 하관예배에 참석할 사람이 처음에는 한 두 사람 밖에 없어서 초상만 났다면 지방이건 서울이건 불문하고 나는 반드시 부목사와 같이 동행을 해야 했다. 하관을 하는 날은 새벽 4시부터 나와야 하는 날, 때에 따라 귀하는 날이 밤 12시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나도 기쁘게 감당했다. 사무장 퇴임은 1996년에 했지만 초상 일에 관여하기는 2008년까지 33년간 95%이상 가정수의 초상에 참여한 것 같다.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위로와 참여에 감사함으로 세월을 보냈다. 회갑이 되자 교회부담으로 미국여행도 시켜주었다.

 

남서울교회 이적한지 한참 되어서 정이 들 무렵, 에피소드가 생겼다. 어느 집사님의 가정이 미국 이민 갈 때의 경험이다. 지금과 달라서 그 때는 미국을 오, 간다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요 김포공항을 이별의 장소가 되다시피 한 때라 영원한 이별인양 그날도 김포공항까지 따라갔는데 마지막게이트에서 여 집사가 악수를 청해왔다. 나도 너무 서운해서 악수를 하려다 그만 얼른 손을 거둬들였다. 아직도 유교적 패러다임을 벗지 못한 해프닝 아닌가. 1980 년대에 강북교회에서의 패러다임은 여자와 악수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남서울교회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신앙적 삶의 방식이 100프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여 집사님이나 권사님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 권사님들이 날더러 오빠라고 불러주는 분이 많아졌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지듯이 교수가 제일 많은 교회에서 가방끈이 제일 짧은 내게 중요한 교회 사무장직을 맡기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것은 겸손한 교회의 패러다임이 아닌가. 싶어 감사하게 여겼다.

 

나는 13년간 연속 당회 서기를 맡아오면서 우리 교회의 행정패러다임을 장려할만하다고 느꼈다. 교회가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홍 정길 목사는 아예 총회나 노회에서 절대 정치를 하지 안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교단들이 숫제 정치판이었다. 특히 한국교회가 지향할 점은 교회정치를 배제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 남서울노회총대로 진주에서 모이는 총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동안 듣기만 했던 돈봉투가 돌아왔다. ‘매해 9월이면 교단총회장 몇 억 들어야 당선이란 고딕체 기사가 생각나서 나는 바로 이때가 기회다 싶어 총회벽두에 앞으로 뛰쳐나가 의장, 긴급동의 안건이 있습니다. 라며 발언권 주십시오.” 외쳤다. 시회자 왈 잠깐만 기다려주시오또 손들고 외쳤으나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더니 부총회장(사실상 익년도 총회장) 선거로 돌입해버렸다. 나는 그 후로 노회나 총회를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발언권을 주면 금전선거를 폭로하려는 참이었다. 국민의 정신적 기조(精神的基調)역할을 교회가 신앙적으로 담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벌할 것이 뻔 한 데 교단의 수장들이 그렇게 돈 선거해왔다는 것은 그때의 나라의 불행을 우리가 자초했다고 생각하고 회개운동을 해야 했다. 그날 저녁설교에 고() 옥 한음 목사님께서 언제까지 돈 선거할 것입니까? 라는 질타 설교에 동감하면서 위로가 되었다. 점심시간에 듣건데 장로회원들의 말이 가관이었다. 주는 것은 받고 투표는 마음 가는 사람에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속이 뒤집어졌다. 그래서 나는 장로회 친목모임에도 안 나가는 동기가 되었다.

 

나는 남서울교회에서 그저 평범하게 일할 뿐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받은은혜를 천국에 가서도 자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남서울교회 오기 전에는 상업의 터전에 살다보니 외모는 물론 정신생활에서도 세련되지 못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 교회의 일원이 되면서 외모로나 일반적 교제생활에 남서울 패러다임에 동화되어버렸다고 자부했다. 생활비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큰 병이 아닌데도 병원에서 퇴원했다면 개인적으로 많은 뷔로금을 보냈다.위로금으로 ZERO가 네개나 5개의 위로금을 받아도 황송한데 zero6개자리가 붙어오면 착오인가 싶어 그 걸 되돌려 보내려고 확인한 후에야 감사히 받았다.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오빠 같으니까 드리는 것이라며 내 생할의 범주를 벗어나도록 사랑을 베풀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네 분이 양복 한 벌 씩을 지어주셨다.. 지금까지 40년 동안 넥타이 구두는 내 돈으로 사본 적이 없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책값을 생각하고 누구에게든 책을 증정해 본적이 없다. 정으로 책 한 권 씩을 보내는 것인데 다섯 권 값 또는 10권 값을 보내주고 어느 집사는 책을 받을 대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며 그때마다 30 권 값을 보내주었다. 맨 마지막 보낼 때엔 이번만은 절대 안 받을 태니 그냥 책을 받으시기만 하시라고 일일히 편지와 함께 보냈다. 우리 성도들 때문에 나는 작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가정에 베풀어 주신 사랑은 무엇으로 갚을까!. 나는 여러 특정한 성도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이러저러한 사랑을 과분하게 받을 만한 일이 없었음에도 주는 대로 받고 살아왔다.

 

사랑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 행위가 초대교회에서 자행되었던 성경적 패러다임의 삶이다. 나이 들어 승용차를 처분하고 서운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파킨슨병으로 인한 걸음걸이가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지팡이라도 의지하고 아직은 대중교통으로 교회출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수교에서 우회전하면 자기 집 문턱인데 매주일 밤마다 안양의 우리 집 문턱까지 평안하게 승차 해주고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는 은퇴 장로가 있다. 시간과 수고가 너무나 큰 선물이지만 먼 거리여서 에너지 값이 상당 하기에 그 거라도 꼭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마저 몽땅 완전 선물한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교회에서 받기만 하는 자만 되지 말고, 죽기 전에 나는 무슨 일을 해서 그 패러다임을 더 살찌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고 기도할 제목이다. 초대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성스러운 공산주의! 성경적 가치관으로만이 사는 패러다임이 아니면 근처에 얼씬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것만이 목회의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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