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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최근에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느꼈던 다소 불편한 감정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얼마 전, 종교개혁 기념주간에 미국에서 목사님이 오셨었습니다.


그 분은 영어로 설교를 하셨지만,  옆에서 또 다른 목사님이 통역을 해주신 덕분에


다행히 루터의 인생과 사상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보통, 예배시간에 굉장히 조용한 편이지 않습니까?

(다른 교회에 비해서)


하지만,그날 따라 유독 성도님들의 호응이 좋으시더라구요 특히, 목사님이 통역을 하기 바로 직전 타이밍에 말입니다.


 지난 주에는,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잠깐, 집세와 이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저는 은행이자만큼만 받아요"라는 대목에서 유달리 호흥을 많이 해 주시더라구요.

 

 그 때 제 귀에는 그 호응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저 해외다녀와서 영어 좀 해요"

"네 제가 바로 그 조물주 위에 건물주이고 채권자입니다"


오해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 글을 쓰는지는 글의 말미에 밝히겠습니다.


새 신자 교육 5주과정 동안, 정말 감사한 일이 많았지만

(써 올린 지난 글들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한편으론, 제 딴에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가 등반할 때 저랑 같이 등반한 분들이 50명 정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인원을 모아놓고 앞에 서서 말씀하는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받으려고만 오지 말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갓 새로들어온 신자에게 "받으려고만 하지말라"는 표현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합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게 이런 일은 "황당한 일" 입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 그런 말들이 오고 가는지 그 내막을 어느 정도는 알겠습니다.


 소싯적에 강남에 위치한 'OOO 교회' 대학부에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 역시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싶어 온게 아니라,


패션쇼를 하고 싶고 짝짓기를 하고 싶어서 교회에 왔구나"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남서울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그러다보니,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구나 하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런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순전한 복음을 찾기 위하여,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하여, 예수님과 교제 하고 싶어서


남서울 교회에 왔습니다.


이런 제게, 영어 설교를 좋아하고 집세 얘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남서울 교회는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습니까"?


빌게이츠 기부하듯 하는 섬김 그런거 저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함께 나누고픈  진정한 섬김은


"내가 가진 게 많은데다가 저 사람보다 빌립보서 2장 3절 말씀을 먼저 공부했으니까


섬겨야지" 하는 이런 종류의 섬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간단한 상상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그 옆에 매달려 있던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받지 않고 죽음을 맞은 다른 한 명의 강도 역시 앞선 강도와 동일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로마정부에서 뒤늦게 그 두명의 강도를


사면해주기로 결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지 직전,


영혼을 구원받고 게다가 이 땅에서의 삶까지 연장하게 된


그 두명의 강도를 보며 크게 기뻐하시면서, 이제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한,서로 사랑하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제 이 두 명의 강도는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단순히 예수님의 그 계명을 알고 지키기 위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이 감동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도님들의 개인적 체험과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우리자신이 깨끗한 존재임을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기억하고 준수해야 하는 법이 아닙니다. 


"이제 너희들은 그럴 수 있다"는 예수님의 열정과 환희가 담김 외침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섬김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교회에 왔습니다.


정말,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동경'하고 하나님과 심장을 공유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왔습니다. 하나님의 실재하는 사랑 없이 그저,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교회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읽듯이 성경 요리조리 읽어서 하나님을 로보트 마냥 멋대로 조종하고


사람들을 적당히 가르치면서 섬기는 척 할 수 있는 신묘한 기술을


전수받으려고 교회온게 아닙니다. 무슨 카이스트 로보트 경연대회라도 참석할 일 있습니까?


그렇게 성경을 자위하듯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존하시고 살아계시며 현재 우리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



저는 결코 이 글을 남서울 교회를 비난하기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미 저는 저를 만족케 하는 것들을 교회에서 받았고,


다닌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정수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성도님들도 몇 분 뵈었습니다.


다만, 교도소에 딸려 있는 화장실에 서식하는 바퀴벌레와 같은 인본주의적 신앙과 교만을 주님께서 소멸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다 같이 늘 깨어 기도하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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