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남서울 톡톡

고대 팔레스타인의 중심부는 유대 산맥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들이 동쪽에서 뻗어 나와 넓고 광활한 지중해 연안의 평야까지 닿는 곳이다. 포도밭과 밀밭, 플라타너스와 테레빈 나무숲이 우거진, 숨 막힐듯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곳이다. 물론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 세기에 걸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수 없이 벌어졌다. 지중해 연안의 평야에서 이 팔레스타인 계곡을 거치면, 유대 고원에 위치한 헤브론, 베들레헴, 그리고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다. 십자군이 해안에 상륙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군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곳이고, 해안에 살던 블레셋 군대가 산악지방에 살던 사울 왕의 이스라엘과 일전을 치루기 위해 거쳐야 했던 지역이다.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일어난 곳이다.
david and goliath valley of ela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도에서 붉은 쪽이 남쪽에서 배치된 블레셋 군대,
북쪽이 사울왕의 군대, 그리고  David과 Goliath가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크레타섬 출신이었지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서 해안에 정착한 해양 민족이었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 왕의 영도 아래, 산악지대에서 무리 지어 살았다. 기원전 11세기경 블레셋 사람들은 (해안에서) 동쪽 산악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ㅡ 엘라 계곡의 아래쪽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베들레헴 근처 능선을 확보해 사울의 이스라엘 왕국을 둘로 갈라 놓는 것이 그들의 전쟁 목표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위험한 종족이었고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위험을 감지한 사울은 신하들을 모아 서둘러 산에서 내려와 블랙잭 군대와 맞붙었다. 

블레셋 군대는 엘라의 남쪽 능선을 따라 진지를 구축했고ㅡ 이스라엘 군대는 북쪽 능선을 따라 반대편에 진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두 진영 협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세가 됐다,  
k62xATtM5w-lkfsroudmyNJfcXHHrXJApon4XyKJ
<<< https://www.youtube.com/watch?v=OmS8GpwidAE 영어로 나오지만 처음 1:30까지만 보면 어떤 형상인지 나옵니다. 성지 순례 가지 못한 분들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깔린 게 돌이라고, 처음 30초에 나옵니다. 해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계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격을 하려면 언덕 아래로 내려가 적군이 진을 친 반대편 능선까지 기어 올라 가야 했는데,이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드디어 블레셋인들이 일대일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가장 뛰어난 전사를 계곡 아래로 내려 보냈다.

청동 투구를 쓰고 전신 갑주를 입은 콜리앗은 키가 210cm 나 되는 거인이었다. 그는 방패, 던지는 창,  칼을 차고 있었다. 또 그의 앞에는 보조병 한 명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서 있었다. 거인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너희는 한 사람을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 나를 쓰러뜨리면 우리가 너희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겨 그를 쓰러뜨리면 너희가 우리의 노예가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진중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누가 그런 무시무시한 상대와 맞붙어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때 전쟁의 나간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올라온 양치기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넌 저 블레셋 사람들의 상대가 아닌 어린 아이일 뿐이지.
저 사람? 어려서부터 전쟁을 해본 백전 용사야!”:


그러나 양치기 소년은 단호했다.
그보다 더한 상대와도 붙어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자과 곰이 와서 양무리에서 양 한 마리를 물어가면,
제가  쫓아가 그 수중에서 양을 구했습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외쳤을 때, 그는 일대일 결투를 요구했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대결을 버리는 양측은 전면전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진영을 대표하는 전사 1명씩을 뽑아 결투를 버리겠다.

예를 들어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퀸투스 클라우디우스 콰드리가리우스Quintus Claudius Quadrigarius가 남긴 전쟁 역사 기록에는  갈리아인 병사가 로마군을 조롱하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 모욕적인 말을 듣고 귀족 출신 젊은이 티투스 만리우스Titus Manlius분노가 폭발했다”.  콰드리가리우스는 이 젊은 로마 귀족 출신 젊은이는 티투스는 다음과 같이 갈리아 전사와 결투했다고 기록했다.

“로마군단의 방패와 스페인 검으로 무장한 그는 갈리아 전사와 마주했다. 결투는 아니오Anio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벌어졌는데, 양쪽 군사들이 엄청난 불안 속에서 지켜보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갈리아 병사는 몸에 익힌 전투 방법에 따라 방패를 들고 공격을 기다렸다. 전투기술보다 용기에 의존했던 만리우스는 자신의 방패로 상대 방패를 들이받았다. 그래서 갈리아 전사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갈리아 병사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 하자, 만리우스는 다시 방패로 방패를 들이받아서 상대방의 위치를 바꾸게 했다. 이런 방법으로 상대의 허점을 노려 그는 상대의 가슴에 스페인 검을 꽂았다….. 갈리아 병사를 죽인 뒤, 그의 목을 베고 혀를 잘라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자신의 목에 걸었다”

이 날 골리앗이 예상한 싸움도 그랬다.
상대방과 근접해서 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다른 어떤 방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생각으로 결투를 준비했다.


몸에 가해질 일격에 대비해 청동 비늘 수백개를 중첩시켜 만든 정교한 갑옷을 입었는데,.이 갑옷은 골리앗의 팔을 덮고 무릎을 가렸다. 아마 무게가 45 kg은 족히 나갔을 것이다. 그는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청동으로 된 무릎 보호대를 차고 두 발을 청동판으로 둘렀으며, 무거운 금속 투구까지 쓰고 있었다.

또 그는 근접전투에 최적화된 방패, 짧은 창, 옆구리에 찬 칼이었는데,
이 창에는 줄이 달려 있어서, 근접한 적을 확실히 맞출 수 있었고
심지어 방패까지 뚫을 수 있었다.

역사학자 모쉐 가르시엘Moshe Garsiel이 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거인 골리앗이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창 앞에 아무 것도 남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청동 방패는 말할 것도 없고 청동갑옷까지도 한꺼번에 뚫릴 것처럼 보였다.”
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앞으로 나선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나타났다!  

서울은 다윗이 싸울 수 있게 자신의 칼과 갑옷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윗은 필요 없다고 했다. 불편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허리를 구부려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은 다음, 양치기 지팡이를 들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골리앗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소년을 보고 모욕감을 느꼈다.  자신과 격이 맞는 노련한 전사를 예상했지만, 그의 눈에는 양치기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모든 직업 중 가장 천한 양치기 소년이 양치기 지팡이를 들고 골리앗의 칼과 맞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골리앗은 지팡이를 가리키며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들고 내게로 나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우리가 잘 아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다윗은 돌 하나를 가죽 물매에 넣고 빙빙 점점 빨리 돌리다가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날렸다. 골리앗은 돌에 맞아 쓰러져 기절했고, 다윗은 즉시 달려가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성경 기록대로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했다”

누구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투에서 한 나약한 소년이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그 이후로 수천년동안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전해 내려 왔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우리의 말 속에 어느 사이엔가 고착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이 거의 모두 틀렸다고 보아야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고대 군대는 세 종류의  병사가 있었다.   첫째는 기병, 말 타고 무장한 군인이었다. 둘째는 보병, 갑옷 입고 칼과 방패를 든 군인이었다.  셋째는 발사병, 즉 오늘 날의 포병에  해당되는데,  활쏘기 궁수와 돌던지기 투석병이었다.  투석병은 매우 놓은 가죽 물매를 가지고 적군에게 돌을 던졌다.

투석은 엄청난 기술과 연습을 필요로 한다. 숙련된 병사의 돌은 아주 치명적인 무기였다,  중세시대에도 이런 투석으로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렸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투석병은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어떤 거리에서든지 동전을 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숙련된 투석병이라면 거의 200m 거리 안에 있는 목표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힐 수 있었다. 로마군인들은 그래서 투석기 공격을 받은 군인의 몸에서 돌을 제거할 집게 도구 세트를 가지고 다녔다.

골리앗이 다윗을 만났을 때 골리앗은
자신이 어떤 싸움을 싸울지 전혀 알지 못했다
.


역사학자 바룩 할펀Baruch Halpern(유대인)는 고대 전쟁에서 세 종류의 병사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균형의 한 축을 이룰만큼 투석이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보병들은 긴장과 갑옷으로 기병에 맞설 수 있었다. 하지만 투석병들에게는 기병이 말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힘든 상대였다.  대신 보병은 투석병들이 가장 쉬운 먹이감이 되었다. 100m 거리에서 그들을 쉽게 격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펀은 이렇게 쓰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시칠리아 원정을 나간 아테네 군은 바로 투석병 때문에 패배했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중보병이 현지의 투석병에게 어떻게 비참하게 졌는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골리앗은 중장비 보병이었다. 그는 상대가 보병이면 보병으로 이기고, 기병이면 그대로 이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점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구절은 “내게로 오라”다.. 골리앗은 다윗이 가까이 와서 싸울 것을 예상했고, 다윗이 가까이 와야 자신의 원하는대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다윗에게 갑옷을 입히고 칼을 주려고 했을 때 사울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일대일 전투를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가 곰과 사자를 물리친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 단지 자신의 용맹함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맹수와 싸우면서 터득한 방식 그대로, 투석병으로 골리앗과 싸울 생각이었다.
IQe-2mQNHEpXHNdm9wCUFZp18VxL-Lr_KFxEbgLu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달려간다.  갑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물매에 돌을 장전하고 휙휙 돌렸다.  골리앗의 신체에서 유일한 취약점인 이마를 노렸다.  점점점 물매를 빨리 돌렸다. 휙휙휙...휘익….
OhG0wwrZO7J3e6xsOqOhae1dYO_wOb5Fh0Fg9M9c<<< https://www.youtube.com/watch?v=cxeAXoLIQ1Y  동영상 한 번 보세요. 성경에 나온 사실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상당히 사실적이고 재미있습니다. 또 https://www.youtube.com/watch?v=JFToOYl1gLs  한 번 보시면 그 장면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탄도학 전문가인 아이탄 허쉬Eitan Hrisch는 최근 실험을 통해 전문 투석병이 30m 거리에서 날린 보통 크기의 돌이 초속 34미터 즉 시속 120km로 골리앗의 머리를 맞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골리앗의 두개골을 관통해서 의식불명에 빠뜨리거나 심지어 죽이고도 남을 만한 위력이다.

오늘날의 권총과 맞먹는 위력이었다. “우리는 다윗이 1초 살짝 넘는 시간에 물매를 휘둘러  골리앗을 명중시켰다 생각한다. 사실상 정지 상태에 있던 골리앗이 자신을 방어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골리앗은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라고 허쉬는 쓰고 있다

골리앗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43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근접 전투를 예상하고 있었다. 옆구리 찬 칼과 손에 든 창으로 조금 떨어진 적을  찌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다윗을 본 순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결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David and Goliath의 1장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런...!!!….한국어 자막 있는 동영상이 마침 있네요! 이런!!! 이걸 알았다면 삽질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https://www.ted.com/talks/malcolm_gladwell_the_unheard_story_of_david_and_goliath/transcript?language=ko#t-330279  ===

그    런    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나중 역사에서 계속 계속 되풀이 됩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갑옷으로 무장한 보병들이 배에 타고, 상대방 배에 접근해서 상대방 배에 올라가 전투한다는 생각했었습니다. 적군의 배에 근접해서 대포를 쏘다가, 결국 보병들끼리 싸운다는 전략이었는데, 그 당시 영국은 스페인만큼 부자가 아니었기에 그럴만한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적함대 규모의 보병을 유지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  당시 영국 해군은  다른 방식으로 싸움을 했습니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배에 대포를 실어, 스페인 함대와 근접전을 갖지 않았다. 대신 먼 거리에서 포탄을 날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사실 이 대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 8세 때부터 개발된 신무기였습니다.

적과 마주치지 않고 먼거리에서 대포쏘기,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택한 방법입니다. 차이가 있었다면,  배 위에서 적군의 배를 명중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희생을 무릅쓰고 스페인함대 근처에 어느정도까지 가깝게 가야만 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고 역사 기록에 나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s73U_96oVo8 참고하셔도 됩니다. 알아듣기 쉬운 한국말 버전입니다!!!!) 혹시나 해서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이 언제 영국에서 미국을 건너갔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ilgrims_(Plymouth_Colony)에 의하면 그 기간은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략할 시기와 그 이후라고 나옵니다. 다시 말해,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대한 핍박이 무적함대의 영국 침략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 그런데요!!!!...... 놀랍게도 다윗이 골리앗을 다
룬 전투방식은 임진왜란 때도 되풀이 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수군은 일본 수군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장거리 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신출귀몰한 작전 결과를 보면, 거의 대부분 조선 수군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나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함대의 규모를 놓고 보면 일본수군이 절대 유리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택한 유리한 장소에서 적당한 때를 노려 왜군을 유인하여  숫자가 더 많은 왜군을 향해  대포를  날렸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왜군은 서해를 통해 수도서울에 입성하는 길을 봉쇄당했다고 나옵니다. 난중일기 기록을 읽어보면 조선수군  피해가 거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벌였던 전투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나온 내용 관련 자료가 나와 너무 길게 적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번호 제목 날짜 이름
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공지 [공지] 스마트폰>파일첨부 기능 추가되었습니다. [2] 2014.09.12 관리자
공지 광고글, 광고성(교회포함) 글, 비방글,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2014.07.18 관리자
1675 (물품)바자회를 위한 기도회(2023년 상반기) [1] file 2023.04.23 남서울교회
1674 2023 부활절 특별찬양예배 [1] file 2023.04.23 남서울교회
1673 (지역선교부)반포지역 봉사자 초청잔치 file 2023.04.15 남서울교회
1672 2023 고난주간 저녁기도회 file 2023.04.09 남서울교회
1671 2023년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file 2023.04.09 남서울교회
1670 세례.입교 감사예배 및 기념만찬 file 2023.04.08 남서울교회
1669 2023년 4월 2일 성례주일(성찬식과 세례식) file 2023.04.06 남서울교회
1668 대한민국 피로회복 3차 헌혈 캠페인 file 2023.03.26 남서울교회
1667 2023년 상반기 교사 세미나 file 2023.03.23 남서울교회
1666 총신대 법인 후원금 [2] 2023.03.19 윤명진
1665 2023년 봄학기 목장 개강 세미나 & 신임 목자 축하식 file 2023.03.16 남서울교회
1664 교육고나 신축에 대한 어쭙잖은 샹각(03) 2023.03.05 한기웅
1663 청년1부 2023 겨울수련회 file 2023.02.18 장유정
1662 권사신년기도회(2023년) file 2023.01.31 남서울교회
1661 2023년도 위원회 교구 신년협조회의 file 2023.01.25 남서울교회
1660 2023 부서조직(주일저녁찬양예배-성찬식) file 2023.01.13 남서울교회
1659 2023년 신년 특별 기도회 file 2023.01.10 남서울교회
1658 송구영신예배 2022-2023 file 2023.01.04 남서울교회
1657 우리, 우리 교회, 남서울교회 2023.01.02 김수익
1656 2022년 은퇴식&중보기도 헌신서약 file 2022.12.30 남서울교회